[묵상] 부르심 : 깊은 곳에 그물 던지기 일상의 시선

지난 10.17일 설교말씀 - "하박국 3장"의 말씀.


(합 3:1)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합 3:2)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3)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합 3:16)○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욥30:17

(합 3: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말씀 자체보다 설교 말씀 중의 해석에 영감을 얻다.

부흥은 모든 살아있는 것의 본질이며, 성장의 원동력이다.
부흥은 결과물로서의 양적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생동하는 모습, 동기, 자세,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부흥은 내가 있는 이 곳, 삶의 현장에 '내'가 아니라 '주의 일', '주의 뜻'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부흥을 '부르심'으로 바꿀 때, 더 깊은 묵상에 잠길 수 있을 것 같다.

부르심.
나를 내려놓고 주의 뜻, 보다 높은 가치가 삶속에, 현장속에 드러낼 수 있도록,
그 부름에 따르는 일, 여기에 삶의 자유와 해방이 있음을...
일터에서 가정에서 내 물질적 소욕과 안정욕구 속에서 소시민적, 소아적 삶을 살아가면서,
책임감있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위안을 삼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묵상하며 들여다볼일이다.


하박국은 물음의 선지자라고 했다.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시련이, 우상을 섬기는 이웃 백성에게는 번영이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하느님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리하여 얻은 답이 하박국 3장이다.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가 없고, 밭의 소출이 없으며, 우리의 양과 소가 없어,
삶이 저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으로 인하여 기쁘고 감사하다는 고백.

주께 대한 소문, 주의 일, 곧 시대정신, 역사의 부름 내지 본질적인(옳은) 가치가 언젠가는 드러난다는(승리한다는)
사실이 자신의 믿음으로 내면화되었을 때, 하박국은 비로소 현재의 곤고하고 비참한 처지 가운데서,
감사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다는 의미.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절박한 시련의 순간이 덮칠 때가 있다.
눈물나도록 힘들며, 도저히 이겨내기 힘들어 "에이 때려쳐야지." 하는 순간이 있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 가운데서 나락에 빠지는 듯한 좌절과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때에, 객관적 삶의 조건보다 붙들며 살아갈 삶의 본질적 가치와 신념, 부르심 자체가 없어,
더욱 비참한 상황이 되지 않기를. 그 삶의 시련이 본질적 가치와 부르심에 순응하며 살아가다가
주어지는 시련이 되기를. 소유욕과 경쟁욕,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가운데 정신없이 치받으며 살다가
자기도 모르게 다가온 시련 앞에 어찌할 줄 모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서지 않기를...

그리하여 절박한 시련의 순간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육체의 소욕과 본질적 가치 가운데,
본질적 가치와 부름을 붙들고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그로 인하여 '지금' 이 순간의 시련에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이후'의 결과(하느님의 응답)가 세상 눈으로 보기에 '성공'과 '행복'이 아닌 것으로 귀결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눈으로 보기에 진정한 '행복'을 쟁취한 모습으로 설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부르심, 삶의 본질적 가치를 묻고 찾기 위해, 부르심의 "바다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했던 갈릴리 제자들처럼.
'익숙함', '안주함'과 거리를 두며, 보다 삶의 진지한 고민과 모색, 꿈을 꾸어야 할 때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결과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자신을 내어던져 내면의 부름, 삶의 본질적 가치에 응답하며 실천을 통해 열매를 거둔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깊이 배울 점이 있는 인생의 스승이다.


2010. 10. 24 (일)


* 아래는 내가 참 좋아하는 찬송 "부르신 곳에서".

*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 그 부르신 곳에서,
   예배하리. 나의 존재를 걸어 하나님의 뜻, 나의 존재가치를 실현해내리.
   자유로운 영성으로. 자유롭게, 또 치열하게.



덧글

댓글 입력 영역